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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우는 시간> 홍성윤 감독, 24회 BIFAN 단편 경쟁 작품·관객상 영예선택 힘들어하는 친구들 위한 영화” 러닝타임 40분, 제작기간은 4년
지난 ‘제24회 단편 영화 시상식’에서 작품·관객상을 수상한 홍성윤 감독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집행위원장 신철)가 지난달 9일 개막, 16일에 막을 내렸다.

한국영화 탄생 101년째를 맞은 올해 BIFAN은 ‘장르의 재능을 증폭시켜 세계와 만나게 하라’는 새 미션을 수행했다.

BIFAN을 통해 장르영화의 재능들을 보여 준 ‘경쟁’ 부문 수상작 및 ‘괴담 단편 제작지원 공모전’ 당선작의 감독·배우들 인터뷰를 서면으로 진행했다. 시상식 때 전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이 심사위원의 기억에서 지워진 시간은 단 1초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에서 보고 싶어 하는 모든 종류의 장르적 재미가 이 한 편에 담겨 있으니까요. 멜로에서 출발해 호러의 다리를 지나 코미디의 터널을 질주하다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엔딩에 관객을 내려놓고 유유히 멀어져가는 작품입니다. ‘죽은 영화도 살려내는’ 영화 속 전설의 편집기사처럼, 죽은 영화제도 살려낼 최고의 화제작에 기쁜 마음으로 코리안 판타스틱: 단편 작품상을 드립니다.”

BIFAN ‘경쟁’ 부문 ‘코리안 판타스틱: 단편’ 심사를 맡은 김세윤 작가의 심사평이 발표되자 시상식장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반면 홍성윤 감독은 김세윤 작가의 최고의 찬사와 달리 “부족하고 미숙한 감독”이라면서 “영화 구석구석에 있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인정받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보편적인 수상 소감을 밝혀 대조를 이뤘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작품상에 앞서 BIFAN 관객이 뽑은 ‘관객상’을 받았다. 관객과 심사위원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은 <그녀를 지우는 시간>의 홍성윤 감독과 서면에 이어 긴 통화를 했다.

-시상식 때 못다 한 소감이 있다면?
“우리 영화의 모든 촬영 회차에 유일하게 전부 참여하신 ‘자랑스러운 부천시민 김다은 분장실장님께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얘기했었는데, 농담처럼 들렸는지 수상 관련 기사들에 그 부분이 빠져서 아쉬웠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다은 실장님께 감사드린다. 저 말고도 또 다른 누군가가 영화의 처음과 끝을 함께 했다는 것은 긴 제작 기간을 버텨나가는 큰 힘이 되었다.

감사한 분이 너무 많고, 시상식 때 ‘이 상들이 그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지만 그래도 특별히 더 언급하고 싶은 분이 한 분 더 있다. 저와 함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해주셨던 문혜인 배우님이다. 관객들이 주는 ‘관객상’이 문혜인 배우님의 고민에 대한 하나의 응원과 지지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랑한다고 얘기했던가? 아무튼, 사랑합니다! 우리 영화가 마지막까지 힘들 때 손을 내밀어주고 응원해줘서 고맙습니다!(웃음)”

 -4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들었다. 제작기를 듣고 싶다.
 “처음에는 빠른 촬영과 작업이 가능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처음에 첫 촬영이 반년 정도 밀렸을 때 마침 영화제에서 <서치>라는 영화를 보고, 영화를 연출한 아니쉬 차간티 감독님의 인터뷰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편집에만 2년이 걸렸다고 하더라. 그 순간 아찔했던 심정이 기억난다(웃음). 결론적으로는 나도 수년이 걸렸으니 그때 그 감독님의 인터뷰가 정말 정확했던 셈이다. 길어진 제작 기간만큼 다른 현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많이 생겼었다.

다른 영화와 촬영이 겹치면서 서현우 배우님이 삭발을 하신 것처럼 충격과 공포의 순간들이 있었다. 스태프 네 분이 결혼을 하고, 김지룡 촬영감독님이 득녀를 하신 것처럼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던 시간이었다. 갓난아기였던 ‘은채씨’(홍성윤 감독은 어린아이지만 아직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라며 존칭을 썼다)가 영화를 완성할 때 즈음에는 말도 하고 뛰어다니더라는 말을 들으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를 자주 빌려 가서 미안했었는데, 무럭무럭 자라서 언젠가 우리 영화를 보여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영화를 다룬 영화다. 전설의 오케이(OK) 컷에만 출몰한다는 편집실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 감독은 영화를 완성하고 싶고, 찾아간 편집자는 OK컷에만 등장하는 귀신을 귀찮아하며 지우기 바쁘다. 귀신은 점점 다른 형태로 진화하는데…. 영화를 다룬 영화 중 가장 발칙하고 웃긴 코미디.

감독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편집기사의 엉뚱한 대사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시네필들이 가장 많은 BIFAN에 어울리는 개성적이고 발랄한 본격 호러 단편영화.’(김정영 BIFAN 한국단편 예심 심사위원)

 -독특한 설정이 우선 돋보인다. 제목만 보면 멜로인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 DVD 코멘터리를 보면서 신기해했던 경험이 있다. TV에서 ‘주말의 명화’와 ‘토요명화’를 빼놓지 않고 보던 내게 있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때 처음 듣는 것이었다. 코멘터리 영상을 보면서 더 신기했던 것은, 영화의 장면들이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제작진의 코멘트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닿았다는 거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데, 제작진들이 현장에서의 위험했던 사고 이야기를 하며 섬찟한 공포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공포영화인데 너무나 화기애애한 제작진들의 만담으로 코미디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와 영화 밖의 코멘트가 함께 진행되면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옛날부터 했었다. 영화 속에 오케이 컷마다 나타나는 ‘오류’는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오히려 상당히 나중에 첨가한 부분이다.”

영화 <그녀를 지우는 시간> 스틸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봤을 텐데 반응은 어땠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웃음이 많이 터져서 기뻤다. 함께 영화를 관람한 박수연 배우님이 무서운 장면에서 생각보다 관객 반응이 약하자 ‘역시 BIFAN 관객분들은 단련이 돼서 그런 것 같다’고 서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웃음).”

-영화 속 ‘감독’이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컷(cut)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컷이나 집착했던 컷이 있었나?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너무 많은 반대가 있었던 영화여서 영화 자체에 집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특별히 지키려고 노력했던 컷이 하나 있지만 스포일러 때문에 여기서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어렴풋이 이해하시리라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영화 속 영화 이야기가 또 펼쳐진다. 두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국은 ‘선택’을 하기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선택’을 하는 걸 너무 힘들어했고,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물로 평가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이 컸던 나머지 너무 긴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포기해왔다.”

-영화의 마지막 편집감독이 “가끔 결과라는 건 과정이랑은 상관이 없는 거다”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편집감독이 하는 영화 말미의 말들은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들이다. 실제로 편집 작업이 길어지면서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 편집 중인 화면에서 들려오는 편집감독의 대사들이 많은 힘이 되었다.”

-영화 찍으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영화의 형식이 일반적이지는 않았기에, 영화의 최종 결과물을 같이 작업하는 분들에게 이해시켜드리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영화 <서치>(2017)나 <언프렌디드:친구삭제>(2014) 같은 잘 알려진 영화들이 있긴 했지만, 그 영화들은 화상통화 등의 설정으로 배우들의 얼굴에 의지하는 영화들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영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만드는 장애물이 되곤 했다. 현장에 가기 전까지는 항상 어려웠지만, 촬영장에서는 언제나 즐거웠던 게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두 촬영 감독님도 내게 항상 맞춰주셨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하게 촬영이 진행됐다.

특히 굉장히 제한된 이틀간의 낮 촬영으로만 8~90컷 이상을 찍어주신 한만욱 촬영 감독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촬영감독으로서의 욕심도 있으셨을 텐데, 많은 부분을 이해해주셔서 얼핏 불가능해 보였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20대 초반의 대학교 시절이 생각나서 무척 즐거운 이틀이었다. 그 당시엔 빠르게 찍어서 별명이 ‘전설의 다작왕’ 남기남 감독님이었다(웃음)”

-엔딩 크레디트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영화만큼이나 신선하고 유쾌했다. “Apple Final Cut 7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며 “고마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했는데 특별히 언급한 이유가 궁금하다.

“Apple의 ‘Final Cut 7’은 2005년부터 사용한 편집툴이다. 굉장히 많은 작업을 함께 해왔고 덕분에 즐거운 추억과 인연들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에 Apple이 7.0.3 버전 업데이트를 한 이후로 10년 동안 버려진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되어 갔다. 이제는 수시로 뜨는 메모리 에러와 충돌 때문에 정말 Final Cut 7을 떠나보낼 때가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영화는 Final Cut 7과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바치는 헌정 영화로 생각했었고, 실제로 Final Cut 7을 사용한 테스트 영상들까지 만들었다.

영화의 영문 제목이 처음에는 <Digital Video Editing with Adobe Premiere Pro: The Real-World Guide to Set Up and Workflow>가 아니라, <Digital Video Editing with Apple Final Cut Pro 7: The Real-World Guide to Set Up and Workflow>였다. 하지만 테스트를 진행할수록 Final Cut 7으로 이 영화에서 요구하는 복잡한 수준의 편집과 워크플로우가 불가능하다는 게 자명해졌다.

결국은 범용성과 안정성, 인터페이스의 레이아웃 등을 고려해 ‘Adobe Premiere’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Apple Final Cut 7에게 고맙다’고 한 건 그래서 넣은 거다. 결국 영화에는 등장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던 Apple Final Cut 7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비록 Apple은 Final Cut 7을 버렸을지라도.”

홍성윤 감독은 <아사노타다노부를 쏜 사나이>(2004), <해바라기>(2005), <페르시아의 왕자>(2005), <앨리스>(2006), <철완 김은희>(2006), <인비저블>(2009), <졸업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진다>(2010), <바다와 나비>(2011), <당신의 스마트폰>(2012) 등 10여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 미쟝센단편영화제 ‘절대악몽’ 부문에 초청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화제의 단편이다. 이번 BIFAN에서 관객들 사이에 티켓 구하기가 힘들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 촬영 현장에서의 홍성윤 감독(테이블 가운데)ㅣ

-다음 영화 작업 계획은?

“여러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제2의 작업을 할 계획이다. 러닝타임상 아쉽게 삭제하거나 진행하지 않은 시퀀스 두 개를 추가해서 일종의 ‘감독판’ 같은 버전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영화제에는 출품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길이가 될 것이라 상영 기회를 찾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같이 작업해줬던 분들과 영화를 좋아한 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단은 삭제했던 한 시퀀스는 복구를 해놓은 상태이고, 나머지 한 시퀀스는 일종의 뮤지컬 장면이라 가사부터 써야 한다. 얼마 전에 추가 제작비 수급에 실패해서 이것도 생각보다 길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벌써부터 들고는 한다…. 문혜인 배우님께 얘기했던 힙합 코미디영화, 박수연 배우님께 얘기했던 타르코프스키 풍의 영화 등 두 편의 단편도 이야기는 다 짜놓았다. 상황에 따라 먼저 작업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과 어떻게 보면 쌍둥이 같은 로맨스 단편영화 시나리오도 있는데, ‘이건 내년에 찍어야지’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이번 영화 전에는 10여 년간 영화를 내놓지 못했었다. 어떤 작업을 먼저 하게 될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번엔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한다.”

-10여 년간 영화를 내놓지 못한 이유는?

“중간에 <고향친구>라는 영화를 찍긴 했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신경 써서 영화를 찍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찍어온 영화를 편집실에서 볼 때 너무 힘들었다. 몇 년을 붙들고 있었다. 완성을 못했다는 게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는데 그때 경험이 이번 영화를 작업하는데 강력한 의지를 만들어 주더라. 촬영이 밀리고 편집과정도 복잡하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어쨌든 결국 이번 영화를 마치면서 개인적으로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의 시간이 됐다(웃음)”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빨리 찍고 빨리 편집할 수 있는 영화(웃음)”

윤상호 대표기자  jn2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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